신비주의란 무엇인지 궁금하시지 않나요
신비주의의 개념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비한 종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미스터리'라는 단어는 '눈이나 입을 가려라'는 뜻의 그리스어 '무오'에서 유래한 것으로 비밀을 지킨다는 뜻이다. 비밀지식에 초점을 맞춘 신비 종교는 조심스럽게 개시자를 선택했고, 개시자는 외부인으로부터 계속 배우거나 비밀을 경험해야 했다.1) 비밀을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은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오늘날까지도 신비 종교의 구체적인 가르침이 무엇인지 불분명하게 남아 있다. 이런 측면을 방금 살펴본 것처럼 신비주의가 비밀로 오인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신비 종교의 가르침은 인간의 영혼 속에 신성하거나 초월적인 차원을 가지고 의식의 변혁을 통해 직접 경험하는 열쇠였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동시에 신비주의가 향정신성의약품의 사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추측된다2. 따라서 신비주의가 초자연적이거나 황홀한 경험만을 추구하는 비이성적인 종교운동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떠오르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비한 종교는 쇠퇴한다. 특히 로마 황제 율리우스(331~363)가 확장된 길에서 기독교에 대항한 고대 신비 종교를 되살리지 못하자 그리스 철학과 함께 신비 종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후 16세기까지 '신체이론' '신체이론' 등의 단어들이 조심스럽게 쓰였지만 서구 종교들은 신비주의에 회의적이었다. 왜냐하면 신비한 영성이 전통 교리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어 감탄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 영혼의 궁극적인 현실과 정체성을 주장하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비주의자들은 상당한 압제에 휩싸였다. 신비주의자들이 받은 오해와 억압은 신비주의가 주류가 아니었고 이단이나 나쁜 종교를 연상시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
오랜 침묵 끝에 신비주의는 개신교의 등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신비주의에 우호적이지 않은 개신교의 일반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과 달리 인간과 신의 매개체를 배척하는 개신교의 교리는 신과 인간의 직접적 만남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와의 교감에 상당히 개방적이었다.
동서 간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신비주의가 전면에 다시 나타난다. 서양인들이 해외 진출을 통해 동양 종교에 노출되면서 신비주의의 일반 명사가 다양한 종교의 비교로 등장3. 즉 신비주의를 다른 종교의 공통성을 언급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보편적인 태도가 나타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비교 종교학을 시작한 학자와 종교인 모임도 동서양 종교의 신비한 통일경험이 비슷한 발견에서 영감을 얻었고, 통일경험이 주는 영원한 지식은 서로 다르게 표현됐다는 이른바 '영원한 철학'을 설파했다.ntly.시간과 공간의 맥락에서, 이것은 System4에 의해 확립된 종교다.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와 종교적 고백의 절대성을 부정함으로써 자유주의 신학의 시조가 된 슐리아마허. 그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논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인간의 종교적 경험과 감정을 신학보다 앞세웠다.
동시에 신비주의는 보다 강한 유물론적 세계관에 대항하는 대항마로 떠올랐다. 과학과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끈 원동력인 물질주의는 종교적 세계관을 불합리하다고 공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을 완전히 대체하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를 표방하고 싶었던 사상가 집단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신비주의 속에서 인간 종교의 뿌리를 찾으려 했다. 특히 교리나 제도가 아닌 개인의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는 신비주의는 당시 각광을 받았던 서구 개인주의와 일맥상통해 더욱 큰 호응을 얻었다.
진정한 종교를 교리와 경전, 의식에서가 아닌 개인의 종교적 감정과 경험에서 재발견하고자 했던 프리드리히 다니엘 에른스트 쉴리레마허(1768~1834)와 신비주의가 종교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루돌프 오토(1869~1937)가 있다. 그러나 신비주의로부터 과학적인 세계관에 의해 부정되는 종교의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그 입장은 신비주의가 인간의 이성에 역행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한 학자는 신비주의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보편주의자들이 종교의 고유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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